추억은 눈이 아닌 마음에 담는다

심플라이프,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면 가장 비우기 어려운 물건이 추억의 물건이 아닐까 합니다. 추억의 물건을 비우는 방법을 제 경험을 풀어 소개합니다.

미니멀라이프 추억의 편지

예전에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사진과 관련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보통 사람들이 일생에 한번 경험할까 말까한 중요한 행사를 다룬 글였다. 이 기사는 찰나의 순간을 놓칠까봐 정신없이 사진을 찍는 엄청난 수의 군중 틈에서 아무것도 들지 않고 눈으로 여유 있게 그 순간을 즐기는 누군가의 모습을 인상 깊게 주목했다. 어떤 유명인사의 방문 행사였던 것 같은데, 인물도 행사명도 기억나지 않지만 순간을 즐기는 그 모습만이 내게 남았다. 꼭 간직하고 싶은 추억은 물건이 아닌 마음으로 담는 거라는 걸 일깨워준 계기였다.

심플라이프,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면서 가장 비우기 어려운 물건 중의 하나가 추억이 담긴 물건들인데 이 역시 비슷한 것 같다. 편지나 사진을 집 안 구석 깊숙이 박아놓고 보지 않는 것보다는 그것들이 없어도 마음속에 잘 간직하는 것이 행복을 높여주는 거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학창시절 친구들에게 받은 수십 장의 편지를 20년 넘게 집안에 보관했다. 다른 물건들은 다 버려도 그것들은 내 삶의 일부 같아서 오랫동안 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꺼내 읽은 적은 거의 없다. 얼마 전 집에서 비워낼 때에야 빛바랜 그 편지들을 20여년 만에 제대로 다시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이날 편지를 집에서 비워내고 구글 포토에 디지털 사진으로 보관하기 위해 하나하나 손에 들고 찍기로 했다. 사실 디지털로 보관한다 해도 이 편지들을 버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비우기 작업이었다. 버리는 게 아까운 마음에 수십 통의 편지를 세 시간에 걸쳐 한자 한자 꼼꼼하게 읽었는데 읽는 내내 눈물이 흘렀다. 베스트프렌드의 크리스마스 카드부터 나와 같은 꿈을 꿨던 친구가 미국으로 이민간 후  한국으로 보낸 편지, 먼 곳에 유학 갔던 친구가 부친 편지,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와 주고받은 편지 등 별 내용은 없었지만 내 이름을 부르며 사랑한다 보고싶다고 이야기해주는 친구들의 마음이 담긴 편지에 내가 이렇게 사랑받은 사람이었구나라는 걸 새삼 느꼈다. 나이가 서른이 훌쩍 넘으면서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기회가 적었다. 각자 사는 게 바쁘다 보니 친구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졌고 인간관계도 일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편지를 버리기로 했을 때에야 비로소 까맣게 잊고 있던 추억을 내 머리와 마음속에 깊이 새겨놓을 수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세 시간 후 미련 없이 그 편지들을 휴지통에 넣을 수 있었다.

친구들과의 추억을 버린 건 아니다. 내가 군중 틈에서 여유를 즐기는 누군가의 순간을 몇 년이 흐른 뒤에도 기억하듯, 나는 만약 디지털 사진조차 없더라도 친구와의 우정과 ‘사랑받는 사람이었구나’라고 느낀 그 마음을 앞으로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고백하건데 편지더미 속에는 과거 연애편지도 있었다. 이별 직후에는 늘 미운 마음이 있었는데 편지 속 문장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며 내게도 사랑받은 날들이 있었구나라는 것을 깨닫자 약간의 응어리마저도 다 풀어졌다. 나야말로 그동안 편지 한 장 준 적 없는 무심한 여자친구였다는 생각이 들어 고맙고 미안해졌다.

만물이 변하든 관계 역시 변하는 법이다. 다만 삶이 힘든 순간마다 나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기억을 떠올리며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추억이 중요한 것은 사진이 아니라 그 순간이 내게 주는 삶의 의미이다. 매순간 사랑을 주고 사랑받는 사람으로 행복하게 살고 싶다. 만약 누군가 추억의 물건들을 집안 깊숙하게 모셔놓고 꺼내보지 않고 있다면 일단 버려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추억의 진짜 의미를 알 수 있을 테니까. 추억이란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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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0T11:06: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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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리
'가장 단순한 것의 힘-인생을 바꾸는 미니멀워크' 저자 탁진현. 심플라이프 운영자. 7년차 미니멀리스트. 삶을 간소화하는 것은 개인, 가족 그리고 나아가 사회와 지구를 치유한다고 믿습니다. 집, 몸, 돈, 일, 관계, 마음 등 단순화에 대한 영감과 노하우를 제공합니다. 칼럼기고/강연강의/인터뷰 문의는 friend@simplelife.kr, 010-6662-9431 [운영자소개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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