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날을 맞으려면 묵은 날을 치워버려야 한다

지난달 지난했던 원고 작업을 마무리했다. 진작 결과물이 세상 밖으로 나왔어야 하건만 예기치 않은 변수 때문에 첫 작품의 일정이 일 년 가까이 미뤄져 차기작으로 생각하던 걸 먼저 내보내게 됐다. 세상 빛을 보려면 편집 작업이 남아있긴 하다. 그러나 내 할 일의 상당 부분은 끝난 셈이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났으니 이제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약 3년 전 회사를 그만둘 때부터 단순한 삶을 알리고자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일을 이제야 비로소 시작하려고 한다.

그러나 새 일을 시작하는 소감은 홀가분해야할 것 같은데 그렇지만도 않다. 나는 지난 일에서 새 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몇 번이나 했다. 중요한 파일이 든 usb를 잃어버리고, 주차하다 차량 사이드미러를 부수고, 열쇠를 한참이나 찾고. 마음이 심란해졌다.

2012년부터 물건과 일 등 내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줄이기 시작한 뒤로 이런 일은 거의 없어졌는데 요즘 다시 재발했다. 그 원인이 뭘까 곰곰히 생각해봤다. 결론은 하나. 머릿속이 다시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끝낸 일에 대한 생각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 생각과 새로운 생각이 엉켜있어서 실수가 생기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태였다.

묵은 날을 치우고 새 날을 맞아야 했다. 그건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머릿속의 엉킨 실타래를 풀어서 묵은 생각을 치운다는 말이다. 나는 원고 작업을 하면서 다시 쌓인 과거의 책들을 포장해서 중고서점에 팔아치웠고, 지난 프린트와 메모를 없앴고, 다시 늘어난 약간의 물건을 없앴다. 단순한 삶을 실천한지 5년이 넘었는데도 언젠가 쓸 것 같은 미련 때문에 자꾸 머뭇거렸지만 새 출발을 위해 과감히 이별을 고했다. 그리고 미뤄놓은 잡일과 덜 중요한 일마저 덜어내고, 혼탁해진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고자 노력했다.

다시 나의 삶은 여행가방만큼의 삶으로 줄었다. 마음이 홀가분하다.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지난 과거가 소중한 현재와 미래의 발목을 잡게 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모두 다 털어버리고 이제는 다음 행보를 위해 나아가려고 한다. 새 날을 맞이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방심하는 순간 나는 또 다시 지난 생각에 사로잡혀서 매일 새날이 아니라 묵은 날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루하루가 새날이 되기 위해 나를 다잡는다. 물건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지난 일을 뒤로하며 묵은 생각을 털어버린다.

수차례 한 이야기지만 역시나 단순한 삶은 시작하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과거를 끊는 용기, 자기절제의 단호함이 필요하다. 뭐든 가지려하고 쌓아두려하는 지난 모든 습관의 관성을 끊어야 하기에 쉽지 않다. 그러나 그 관성에서 벗어나는 순간 삶의 변화가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단순한 삶(심플라이프, 미니멀라이프)는 단지 물건을 비우는 삶이 아니다. 보기 좋은 인테리어를 만드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내가 정의하는 단순한 삶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비우고 삶을 가치있는 것으로 채우는 태도이다. 그건 즉, 새 삶으로의 ‘변화’다. 내게 단순한 삶은 <삶을 바꾸는 방법>이다.

나는 단순한 삶을 시작한 뒤로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물건을 시작으로 몸 돈 일 관계 마음 등 나를 바닥까지 비워내면서 놓치고 있던 현재의 행복을 하나씩 찾았고, 10여년간 일한 신문사에서 나와 내가 진정 원하는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새 술을 따르려면 남은 술을 비워야 한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누군가 지금과 다른 새 삶을 살고 싶다면 묵은 삶을 뒤로 해야 한다. 지난 물건을 버리고, 일을 치우고, 생각을 덜어내야 한다. 그럴 때 비워진 삶의 여백에 진정 원하는 새 삶이 담을 수 있지 않겠는가.

2017-09-23T18:20:32+00:00

About the Author:

심플리
'가장 단순한 것의 힘-인생을 바꾸는 미니멀워크' 저자 탁진현. 심플라이프 운영자. 7년차 미니멀리스트. 삶을 간소화하는 것은 개인, 가족 그리고 나아가 사회와 지구를 치유한다고 믿습니다. 집, 몸, 돈, 일, 관계, 마음 등 단순화에 대한 영감과 노하우를 제공합니다. 칼럼기고/강연강의/인터뷰 문의는 friend@simplelife.kr, 010-6662-9431 [운영자소개 클릭]

2 Comments

  1. Rhee Dai Yeon 2017년 9월 12일 at 11:22 오전 - Reply

    심플라이프(미니멀라이프)는 불필요한 것을 비우고, 삶의 참 가치를 채우려는 태도이자 평생의 노력이라는 운영자님의 말씀이 제 마음 깊이 자리 잡네요. 늘 그렇듯, 미니멀라이프는 평생동안 진행해야 할 수도자의 수행과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꾸준히 진화하고 발전해 나가는 바뀌는 삶을 오늘 또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

    • 심플리
      심플리 2017년 9월 12일 at 2:29 오후 - Reply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참 갈수록 어렵다고 느낍니다. 처음엔 재미도 있고 절실해서 시작했는데 유지하는데는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함께 노력해보아요 ^^

Leave A Comment

가이드 고민상담 알림 테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