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하게, 더 행복하게
한때 “지름신” “탕진잼” “시발비용”과 같은 말들이 SNS 상에서 유행했다. 세 개의 신조어는 모두 소비문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충동구매를 일삼거나, 돈을 흥청망청 다 써서 없애고, 스트레스를 받아 홧김에 불필요한 소비를 한다. 많은 이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크고 작은 소비’를 선택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더 행복해졌을까? 웹사이트 ‘심플 라이프’의 운영자이자, 『가장 단순한 것의 힘』의 저자 탁진현 씨는 지나친 소비를 멈추고 ‘비우기’를 실천해 볼 것을 권한다.
남궁소담 기자
10년 묵은 서류 상자들을 버리던 날
탁진현 씨는 7년 차 미니멀 리스트다. 2012년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비우는 삶을 살게 되었다. 당시 기자로 일했던 그는 너무 많은 일과 정보, 복잡한 인간관계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건강에도 문제가 생겼다.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일과 건강, 인간관계에서 모두 비상등이 켜진 것이다. 돌아보면 힘든 일이 한꺼번에 찾아온 해였다. 기분전환을 위해 물건을 구입하기도 했다. 예쁜 액세서리나 가방, 옷을 사서 방 안을 채우기도 했다.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쇼핑 밖에 없었다. 삶이 복잡하니 어디에서라도 답을 구하고 싶었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책을 사다가 하루 이틀에 한 권씩 읽어 나갔다. 6개월 정도 슬럼프를 겪으면서 집은 점점 창고처럼 변해갔다. 너무 많은 물건들이 쌓여갔고, 공간이 비좁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변화의 기회가 찾아왔다. 수많은 서류들로 가득 찬 베란다에서였다. “문득 복잡한 이 집이 꼭 내 머릿속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너무 복잡한데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아무것도 몰랐죠. 베란다를 보니 10년 간 모아놓은 서류들, 보도자료, 취재수첩, 심지어는 대학 때 쓴 리포트가 들어 있는 상자들이 있더군요. 무려 7개의 상자였어요. 제가 이사를 자주 다녔는데도 그 상자들을 계속 짊어지고 다닌 거예요. 취재 수첩 하나를 펼쳐봤어요. 글씨를 전혀 알아볼 수 없었어요. 그 상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더 큰 집을 찾아보고 다녔는데, 글씨조차 알아볼 수 없다는 게 너무 웃겼어요.” 탁진현 씨는 그날 7개의 상자를 모두 버렸다. ‘언젠간 필요할 거야’라는 생각으로 모아두었던 수많은 서류들을 버리고 나자,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홀가분함이었다. 그날 이후, 삶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쌓아두고만 살았던 물건들을 하나하나 비워내자 마음도 편안해졌다. 비워내는 삶을 통해 조금씩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삶 전반으로 확장된 ‘비우기’
탁진현 씨는 물건을 줄이고 집을 정리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건강과 인간관계, 일에서도 비우기를 실천해 나갔다. 건강을 위해서 화학조미료를 끊고 먼지 발생이 우려되는 침대 매트리스도 버렸다.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던 1700개의 연락처와 셀 수 없이 많은 명함들도 줄여나갔다. 또한 하루에 두세 가지 할 일만 만들기로 했다. “인간관계의 경우, 버리고 비운다기 보다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우선순위를 두는 방식이었어요. 만날 때마다 부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사람과는 연락을 멈추고, 행복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이들만 곁에 두었죠. 물건도 사람도 일도, 내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관리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살자고 다짐했죠.” 많은 사람들이 일에 치여 산다. 일도 물건처럼 쌓아둔다. 항상 일이 많다고 느끼면서도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저런 일을 벌이고,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그래서 탁진현 씨는 그날 해야 하는 일이 있을 경우, ‘하루에 두 가지 이내로만 한다’는 식으로 기준을 정했다. 일 년의 계획이나 평생의 계획 역시도 한두 개만 정해서 실천한다. 수많은 일을 한꺼번에 해내려던 시절보다 효율성과 생산성이 늘었다고 얘기한다.-
심플한 방 -
최소한의 식기 -
여행가방만큼만 소유하는 소품
비울 것과 남길 것
단순한 삶을 추구해 나가면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기느냐’에 대한 기준도 차츰 변화해 나갔다. 처음에는 ‘비울 것’을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2~3년 정도 지나고 나니 한계에 맞닥뜨렸다. 더 이상 물건을 줄이지 못하는 상황에 부딪혔다. 또한 비우기에 집착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도 들었다. 행복하려고 시작한 비우기가 스트레스로 돌변하려 했다. 그때 세계 일주를 한 사람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세계 일주를 한 사람을 만났어요. 1년 동안 배낭 하나만 메고 다녔다고 하더군요. 그 분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저도 생활 소품들을 여행 가방에 넣어보기로 했어요. 처음에는 잘 안 들어가더라구요. 언제 돌아올지 모를 장기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하고 필요 없는 물건을 비워냈어요. 그랬더니 생활 소품들이 여행 가방 안에 다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후 여행 가방 안에 들어 있는 물건들로만 생활을 해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그때 탁진현 씨는 깨달았다고 한다. 사람이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물건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걸 말이다.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다수의 물건들은 필수품이 아니라 약간의 취향과 편리를 위해서 추가한 옵션 같은 제품이더라구요. 많은 사람들이 제게 물건이 적어서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는데, 오히려 더 편해요. 물건이 적으니 청소하기도 좋고, 공간도 더 넓게 쓰죠. 물건을 어디에 뒀는지 잊어버릴 일도 없답니다.‘비울 것’에 대해서 꾸준히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레 ‘남길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역시도 한 사람과의 인연이 계기가 되었다. “독서모임에서 알고 지낸 분이 어느 날 이런 얘기를 하시더군요. 본인은 중요한 외출이 있을 때면 블랙 원피스 두 벌을 번갈아가며 입는다고요. 그분을 1년 넘게 만났지만 매번 같은 옷을 입는다는 걸 전혀 몰랐거든요. 심지어 그 얘기를 하시던 날에도 블랙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그때 생각했죠.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는 걸 말이에요.” 당시 탁진현 씨에게는 미처 버리지 못한 옷들이 제법 있었다. 대부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구입한 옷들이었다. 격식을 차리기 위해 불편을 감수하며 입었던 옷들, 유행에 따라가기 위해 구입했던 옷들,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색상과 디자인의 옷들. 탁진현 씨는 남겨둘 옷을 추려보기 시작했다. 총 25벌의 옷을 고르기로 했다. 그만큼이면 사계절 내내 옷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상의 5벌, 하의 5벌이 있다고 가정하면 총 25개의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죠. 여기에 카디건을 하나 걸치면 경우의 수는 더 늘어납니다. 물론 25벌이라는 건 저에게 맞는 기준이에요. 어떤 분에게는 50벌의 옷이 필요할 수도 있죠. 각자에게 알맞은 기준을 세우면 돼요.”하지만 예뻐서 산 옷을 버리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탁진현 씨는 그럴 때는 상자 하나를 구해서 그 안에 버리고 싶은 옷을 넣어두라고 조언한다.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반 년 후에 상자를 열어보면, 옷을 버려야 할지 남겨야 할지 답이 나올 것이다.
나의 소비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
소비를 줄이고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해 나가는 것은 분명 개인의 삶에 변화를 가져다준다. 탁진현 씨는 단순한 삶을 경험하면서 물건의 폐해를 확실하게 깨달았다고 한다.
지금 행복한가요?
그렇다면 미니멀 라이프를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 단순한 삶에는 공감을 하면서도 막상 실천하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막막해 보인다. 탁진현 씨의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도 “줄일 것이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줄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자주 얘기한다고. 그럴 때는 본인이 하고 싶은 것부터 시작해 볼 것을 권유한다. 만약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책부터 줄이라고 하면 어떨까. 당연히 비우기 어려울 것이다. 이럴 때는 버리기 쉬운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가장 먼저 유통기한 지난 것부터 줄여보세요. 음식, 화장품, 욕실용품 등에는 사용할 수 있는 기한이 정해져 있죠. 그걸 넘어서면 쓸 수 없는 것이 됩니다. 이처럼 쓰레기가 된 것들부터 비워내세요. 그 다음에는 몇 년 동안 쓰지 않았던 물건을 버려보세요. 1년, 2년, 3년… 각자의 기준으로 기간을 정해서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한꺼번에 줄이고 싶다면 제가 했던 것처럼 소유에 한계를 정해놓고 남길 것들만 추려보세요. 옷을 30벌, 책을 10권… 이런 식으로 기준을 두는 거죠. 버릴까 말까 고민이 되고 미련이 남을 때는 상자에 잠시 넣어두시구요.” 탁진현 씨는 물건에서부터 시작한 미니멀 라이프를 삶 전반으로 확장해 볼 것을 권했다. 단순히 집을 깨끗하게 정돈한다거나 물건을 조금 버리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삶의 본질적인 측면에서 비우기를 실천하면 우리는 행복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미니멀 라이프가 삶의 간소화로 이어지면 정말 놀라운 변화들이 찾아와요. 작은 집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고, 돈에 쪼들리지 않아도 되고, 더욱 건강해지고, 일을 즐겁게 할 수 있지요. 마음이 정말 편해지고요. 인생에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조금씩 알게 되어요.” 지금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지나치게 많이 소유하고 소비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각자 나름의 기준으로 한계를 설정하고 그 안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 미니멀 라이프는 행복으로 나아가는 또 하나의 길이다.남궁소담 기자 월간 사람
책 <가장 단순한 것의 힘>은 6년간 집과 일, 마음 등의 단순한 생활을 하면서 겪은 경험담과 노하우를 쓴 책입니다. 2017, 홍익출판사
심플하게, 더 행복하게!